"영화계가 인신매매 은폐"…여배우 공개 폭로, 프랑스 '발칵'

입력 2024-02-27 10:10   수정 2024-02-27 10:11



10대 시절, 영화 촬영을 하면서 감독에게 성관계 장면을 강요당하는 등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해온 배우 쥐디트 고드레슈(51)가 "프랑스 영화계는 '여성의 불법 인신매매'를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드레슈는 23일(현지시간) 열린 프랑스 최대 영화제인 세자르상 시상식에서 "프랑스 영화계가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라며 이같이 비판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날 시상식은 프랑스 방송을 통해 생중계됐다. 고드레슈는 무대에 올라 "왜 우리가 이토록 사랑하고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이 예술이 젊은 여성에 대한 불법 인신매매를 덮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느냐"면서 "우리는 더 이상 강간죄로 고발당한 남성들이 영화계를 지배하지 않게 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드레슈는 1985년 영화 '라떼 프로체인'으로 데뷔했고, 이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1998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출연한 '아이언 마스크' 등의 작품으로 국내에서도 얼굴이 알려졌고, 지난해엔 감독으로 '아이콘 오브 프렌치 시네마'를 내놓으며 연출가로서 역량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동안 수십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 잡았지만, 고드레슈는 "10대 때 유명 감독에게 성폭행당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활동에 우려가 있더라도, 영화계의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남성들에 대해 얘기하라"고 촉구했다.

고드레슈는 "세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며 "우리는 자유가 존재하는 나라에 살아가는 행운을 누렸다"며 "우리가 창조하는 데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도덕적인 힘을 갖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침묵 속에서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격려했다.

이어 "여주인공을 화면에 구현하지 말고, 실제 생활에서, 자기 내면에서 발견하도록 하자"고 덧붙였다.

고드레슈는 앞서 베노이트 자코 감독과 가수이자 배우인 제인 버킨의 전 파트너였던 자크 두아용 감독이 자신이 10대였을 때 강간 등 성폭행을 했다고 고소했다. 고드레슈는 자코 감독이 자신을 1987년 영화 '레 멘디앙스'에 캐스팅한 후 연인 사이로 발전했고, 영화 산업 관계자들을 비롯해 미디어 앞에서 그를 추행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고드레슈의 나이는 14세, 자코 감독은 39세였다. 또한 두아용 감독은 1989년 영화 '15세 소녀'를 촬영하는 동안, 그가 15세였을 때 대본에 없는 성관계 장면을 45번이나 촬영하도록 강요했다고 비판했다.

다만 두아용 감독은 이 같은 주장을 부인하며 고드레슈를 거짓 주장을 한 혐의로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자르상 시상식이 여배우의 성범죄 피해 연설하도록 허용한 건 앞서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시작된 후 처음이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미투 운동은 프랑스에서 더디게 진전됐다"며 "강간을 포함한 과거의 성적 학대 이야기를 제기하는 여성들은 종종 반발에 직면했다"면서 지난해 12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성폭행과 성폭행 혐의를 받는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를 변호하며 그가 '마녀사냥'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던 사례를 소개했다.

"12살 때 유명 감독에게 성희롱당했다"고 고백하며 프랑스에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을 촉발한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 아델 에넬(34)은 "성범죄자에 대한 안일한 대응"을 문제 삼으며 최근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아델은 지난해 5월 프랑스 현지 매체 텔라라마에 서한을 보내 "정치적인 이유로 영화계에서 물러난다"며 "프랑스 영화계가 성범죄자들을 벌하는 데 실패하고, 성범죄 피해를 알린 여성들을 배척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처럼 밝혔다.

실제로 프랑스 국민 배우라는 칭호를 받았던 제라르 드빠르디유는 13명의 여성에게 성폭행 혐의로 고발당했음에도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미성년자에게 성범죄자를 저지른 의혹을 받고 있다. 도미닉 부토나는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후에도 프랑스 최대 영화 기관 CNC 책임자로 복귀했다.

세자르상 시상식 역시 지난해엔 심사위원단이 최우수 감독상 후보로 남성 전원을 내세웠고, 여성이 만든 단 한 편의 영화만이 최우수 영화 부문에 후보로 오른 후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 영화계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반응이다.

이날 시상식에는 라시다 다티 프랑스 문화부 장관도 참석했다. 다티 장관은 이날 시상식이 열리기 전 공개된 언론 인터뷰에서 고드레슈의 '미투'를 지지한다며 프랑스 영화 산업이 "수십 년째 성폭력에 집단적으로 눈을 감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우리가 말하는 것은 예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소아 범죄에 관한 것"이라며 "이번 일이 프랑스 영화계가 심오한 자아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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